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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다/영화를 기록하다

Edge of Tomorrow,2014/엣지 오브 투모로우

by 덤덤히 기록하다 2018. 9. 30.

 *이 감상문은 높이지 않은 문어체로 쓰여졌습니다.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같은 매일 속에 갇힌 한 사람의 다른 매일을 보여주는 영화다.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우리들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워하던 내 모습이 케이지 소령의 첫날 같았다. 점차 익숙해지는 한때 새로웠던 일들과 마찬가지로 케이지 소령의 같은 매일도 점차 익숙해지고 노련해진다. 요즘의 나는 불과 몇 주 전의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생각하며, 모든 일들은 다 과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나는 늘 지름길로만 다니고 싶어 했지만, 정작 내가 발견한 지름길은, 지름길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빨리 아는 것이었다. 내가 겪는 모든 감정과 과정들을 한시라도 빨리 인정하는 것이었다. 











 케이지 소령이 겪는 매일매일이 매우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 참 재미있다. 같은 기분, 같은 습관으로 틀에 박힌 모습으로 행동하는 주변인들 속에서 케이지 소령은 고군분투를 벌인다.

 어떤 인물, 어떤 상황이 탈출구가 될지를 연구해야 하는 매일매일이 그 앞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문을 여는 열쇠는 케이지 소령이 쥐고있다. 대상에 대한 이해와 애정과 집중도가 중요한 대목이다. 아래의 캡쳐 장면은 그의 연구 과정 중에 실패했던 사례 중 하나이다.





 파렐 상사는 모든 것을 알고있는 것 같은 그의 상황 설명에 이상하다는 얼굴 표정을 짓지만, 이내 습관처럼 그의 사고방식대로 혹은 그 일이 있었던 첫날처럼 행동한다. 케이지 소령은 그에게서 새로운 면을 끌어내기에 실패했다. 새로운 면을 끌어낼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이 궁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른 말로 소울메이트. 그리고 그 대상이 파렐 상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여러 시도를 하지만, 죽는 나날의 연속이다. 하지만 묵묵히 더 오래 살아남는 법을 연구한다. 묵묵히. 빅픽처 패밀리에서 우효광 씨가 직접 써서 준비한 '영정치원' 족자의 뜻처럼(묵묵히 해야 원대한 목표를 이룬다.), 그는 '영정치원'했다.

 그는 정말로 묵묵히 더 오래 더 많이 살리는 길을 연구하던 끝에, 결국 더 나은길로 접어드는 열쇠를 발견한다.





"Come find me When you wake up"(일어나면 나를 찾아오세요)













 이제 그는, 반복되는 매일 속에 반복되는 같은 대사들 속에서 더 멀리 보게 되었다.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톰 크루즈의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어쩐지 반복되는 바로 그 하루에 노련해진 것 같은 표정이다.














 이 부분은 참 유쾌하게 봤다. 반복되는 죽음이기 때문인지 그는 새로운 것을 참 거침없이 시도한다. 





 "What The Hell Were you think?"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야?)

 이 대사가 개그의 절정을 이루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든 것을 지켜봐온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그날에 살고 있는 그들은 모른다. 이 부분이 참 재미있다.


 나는 살아가면서 이 대사를 할 날이 참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더 큰 무언가는 이유를 알겠지, 더 많은 것을 봐온 누군가는 알겠지, 바로 그 대상이라면 스스로는 알겠지 하면서 말이다.














 무한 반복되는 "Again"(다시) "Maggot"(굼벵이) 



 

 무한 반복되는 "Again" "Maggot" 



 무한 반복되는 "Again" "Maggot" 



 무한 반복되는 "Again" "Maggot" 



 무한 반복되는 "Again" "Maggot"




 오메가가 있는 곳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무한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도 잠재된 발전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어서 위안을 얻었다. 나는 무한히 반복되는 때에 자주 슬럼프를 겪곤 한다. 지겨움의 연속이다가 어떤 날 "유레카!"를 외치기 딱 좋은 깨달음이 있곤 하다. 이 위안 덕분인지 지금의 나는 지루한 일상이 고맙고, 또 절제된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 반복되는 무참한 비극. 발전했다고 기뻐하며 이제 알게 된 그 무엇을 시도하려는데 무참히 실패하는 그런 비극일까. 내가 겪는 일상들과 스케일만 다르지 별반 다를 것 없는 소령의 하루를 보며 함께 슬펐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계속된 죽음, 그것이 리타 하사이든, 처음 만났지만 그에게는 처음이 아닌 전우들의 죽음이든. 





 그는 점차 비극 앞에서 좌절감을 느낀다. 모든 것을 놓고 싶은 그 좌절감. 내가 겪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여린 마음. 





그리고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잠깐의 방황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별다른 미래는 없었다.



 결국은 죽음. 그리고 아마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그저 잠깐 쉬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홀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렀을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그의 몸놀림에서 그가 그간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는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무한히 반복되는 같은 상처들을 느끼며 사는 내가 있다.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인만이 아는 상처다. 우리 모두는 지극히도 외로운 싸움을 할 것이다. 타인들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지루하고, 반복적일 것이다. 아마도 지금도 계속되는 상처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 분야에서는 케이지 소령만큼이나 베테랑일 수도 있다. 가끔씩 반복되는 상황 속에 개그 코드가 있을 것이고, 지극히 비극적인 일도 있을 것이다.










 하사가 소령의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행동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을 이해한다는 듯한 노려봄이 참 감동적이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놀랍다. 소령이 그동안 갈고닦았던 전투 능력, 숱하게 많이 경험했던 모든 전투들은 소령이 하사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며 사랑을 만들기 위한 일이기만 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을 정도다. 마지막에 필요했던 것은, 전투력도 아니었고, 그간의 전투 경험이나 다른 경험들도 아니었다. 자신이 하루를 리셋하는 능력에 대한 짧은 지식과, 과학자의 새로운 진실. 거기에 생존 시간을 아주 약간 연장할 정도의 전투력.

 


 소령이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간이 경험을 마약만큼이나 즐긴다는 것에 대해서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간다기보다는, 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역으로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랬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바로는 그랬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사실 조금 더 빠른 길이 있었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러나 길게 돌아오는 길이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영화에서 느끼는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아예 새로운 방면으로 다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고..

















 케이지 소령이 군대로 징집되던 전날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날에 오메가는 없다. 케이지 소령과 오메가의 피가 섞이면서 이런 결말이 맺어진 듯하다. 이 장면은 영화를 몰입해서 봤다면 정말 짜릿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오메가는 알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걸까.

 오메가가 전투능력을 상실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소령에게는 오메가의 능력이 발현된 걸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아직은 살아있다는 걸까.

 오메가가 죽으면서 딱 한번 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걸까.

 앞으로도 소령은 죽고 눈을 뜨면 바로 또 그날부터 시작하게 되는 걸까.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그 능력을 발휘할 날이 자주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지게 된 능력이라면, 그는 불사의 존재가 된 것일까. 아니면, 이건 그저 소령의 마지막 환상이었을 뿐일까.

 이런 공상과학적인 의문은 늘 길고 재미있지만 이쯤 하겠다. 어차피 답도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리타 하사를 바라보는 소령의 눈물을 머금은 미소가 인상 깊었다. 나도 언젠가 죽는 날에, 그런 미소를 띠면서 태어나고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태어나는 내게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잘 할 거라는 듯한 미소를 말이다.

















 우리는 케이지 소령처럼 같은 매일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부터 굳어진 습관과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 습관과 관념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말이다. 어찌보면 달라 보이는 하루하루지만, 늘 같은 선택을 내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케이지는 행운아다. 그는 매일 다른 선택을 내려야만 출구가 보이는 길에 들어섰다. 다른 나날들을 같은 선택을 내리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나에 비하면 행운아다. 이 영화는 내게 "어쩌면 너는 케이지만큼 똑같은 나날에 갇혀있을 지도 모른다"라는 교훈을 준다. 

 나는 얼마나 다른 선택들을 내리면서 출구를 향하고 있는지. 어제보다는 더 새로운 선택들을 내리고 있는지, 습관적이지 않은 새로운 생각들을 하며 살고는 있는지. 깨어있는지.